주말에는 재미있는 락음악 별전 - Beatles, 조지 해리슨과 에릭 클랩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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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엘리엇입니다.
여러분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주재락이 돌아왔어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늘도 연재하지 않으면 2MB로 불리겠다고 배수진을 쳤다지요(...)

약속했던 대로 조지 해리슨과 에릭 클랩튼의 그녀인 패티 보이드에 대한 이야기를 별전으로 준비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메인 인물은 아무래도 패티 보이드라고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이 분의 대략적인 생애를 살펴보면서, 두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겠습니다.

PATTIE BOYD



패티 보이드. 본명은 Patricia Anne Boyd고, 1944년에 영국 서머셋에서 태어나서 1960년대에 모델로서 활동했지요. 비틀즈 멤버 조지 해리슨과 에릭 클랩튼의 전처로, 두 남자와의 삼각관계로도 유명합니다. 조지 해리슨과 에릭 클랩튼의 명곡들을 탄생하게 한 분이죠. 조지 해리슨은 ‘I Need You', 'Let It Down', 'Think For Yourself', 'Something', 'So Sad'를 그녀를 위해 작곡 했고, 에릭 클랩튼은 그 유명한 ’Layla'와 ‘Never Make Your Cry', Pretty Girl', 'Wonderful Tonight'를 작곡 했습니다. 전부 다 전설적인 명곡이죠.

패티 보이드가 비틀즈와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은 1964년 비틀즈의 영화인 A hard Day's Night에 패티 보이드가 출연하면서부터입니다.

사실 그리 비중이 큰 역할을 맡은건 아닙니다. 처음엔 비중이 컸지만, 연기력이 딸려서였는지, 영화 내에서 “Prisoners?"라는 대사 한마디로 역이 줄어들었죠.

그녀가 비틀즈에게 싸인을 요청하면서 그들과 친해지게 됐는데요, 조지 해리슨은 다른 사람에겐 하트 한 개만 그려줬는데 패티 보이드에게는 무려 일곱 개의 하트를 그려줬다더군요. 아무래도 처음 만남부터 흑심이 있었나 봅니다. 그런데 그 시절의 패티 보이드에게는 남자친구가 있었습니다. 처음에 조지 해리슨이 작업을 걸 때는 그리 쉽게 넘어가지 않았죠. 하지만 그녀는 조지 해리슨과 함께 있으면 항상 재미있었다고 해요. 점점 패티의 마음이 조지 해리슨에게 기울고 있었죠. 결국 그녀는 2년 간 사귀던 남자친구를 떠나 조지 해리슨과 사귀게 됩니다.

이듬해인 65년에는 조지의 집으로 패티가 건너가면서 동거를 하게 되구요, 그 해 크리스마스에는 약혼을 하지요. 그리고 그 다음 해 1월에 결혼식을 올립니다. 결혼을 하면서 그녀는 모델 일을 그만두게 되는데요, 이는 그들의 사생활이 언론에 노출되는걸 극도로 꺼려했기 때문이죠. 패티 보이드와 조지 해리슨 커플은 비틀즈 멤버 중 유일하게 초혼 중에 임신하지 않은 커플이었는데, 이는 그녀가 애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뭐, 이건 조지 해리슨과의 결혼 생활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만, 에릭 클랩튼과는 문제가 됐었습니다.



어쨌든 앞날이 창창할 거 같았던 이들의 결혼생활은 생각보다 위기가 금방 찾아왔습니다. 66년에 부부가 같이 인도에 여행을 갔었는데, 조지 해리슨이 인도에서 힌두교의 신비주의와 명상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그녀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한거죠. 게다가 결혼 1년 후 즈음에 그의 바람기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패티 보이드는 그를 다시 돌아오게 하고자 애를 쓰는데, 조지 해리슨은 밖으로만 나돌았습니다. 패티 보이드는 결국 최후의 수를 꺼내듭니다. 그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조지 해리슨의 절친한 친구인 에릭 클랩튼을 유혹한거죠. 하지만 이는 되려 자신이 친 덫에 자기가 걸려든 격이 되어버립니다. 에릭 클랩튼이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거든요.


여기서 우리는 조지 해리슨과 에릭 클랩튼이 어떻게 친해졌는지 살펴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사실 그들이 친해진 것은 64, 65년에 에릭이 소속된 밴드 야드버즈(The Yardbirds)가 비틀즈의 콘서트에 출연하면서예요. 하지만 그들이 급속도로 친해진 것은 비틀즈의 White Album에 실린 조지 해리슨의 곡인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에서 에릭 클랩튼이 기타 연주를 해주면서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절친해진 시점에 패티 보이드가 그를 유혹한거죠.

에릭 클랩튼은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을 가지게 됩니다. 친구에 대한 우정과 친구가 가진 모든 것, 특히 패티 보이드에 대한 질투가 공존하게 된거죠. 그는 그녀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녀의 여동생과 사귀기도(-_-) 했고,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졸지에 친구 사이는 연적으로 변했습니다. 에릭 클랩튼의 사랑에 패티는 기뻐하긴 했지만, 동시에 겁을 먹고 그와의 짧은 교제를 끝마쳤죠. 왜냐하면 조지 해리슨이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거든요. 이내 조지는 패티에게로 되돌아왔고, 에릭은 버림받았습니다. 에릭 클랩튼이 희생양이 되어버린거죠.

이때의 조지 해리슨의 마음을 표현한 곡이 비틀즈의 Something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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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때문에 에릭 클랩튼의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집니다. 게다가 아뿔사, 에릭 클랩튼의 또 다른 친구였던 지미 핸드릭스가 죽어버립니다. 그에게는 최악의 시기였습니다. 헤로인에 중독되어 폐인 같은 생활을 하지요. 그 기간동안 그는 그의 절절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기타를 손에서 떼질 않았고, 그렇게 탄생한 곡이 전설적인 명곡인 ‘Layla'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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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NANA에서도 나온 노래죠. 전설적인 기타리프와 애절한 멜로디가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이 노래에서의 레일라는 당연히 패티였습니다. 레일라는 ‘The Story of Manjun and Layla'라는 작품에서 따온 캐릭터인데, 이 여인을 위한 헌신적인 사랑을 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조지 해리슨은 돌아온 것도 잠시였습니다. 도로 바람피고 다녔죠. 결국 그녀의 마음이 서서히 그에게서 멀어져갑니다. 도로 모델 활동을 재개했고, 한 때는 롤링 스톤즈의 기타리스트 론 우드와 사귀기도 했나봅니다. 이런 위태위태한 결혼생활이 종지부를 찍은건 1974년입니다. 

우연히 해리슨 부부와 만난 에릭 클랩튼이 조지에게 다가가 그녀를 사랑한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런데 조지 해리슨의 반응은 뜨악했습니다. “Fine. You get her, I get your girlfriend." 이런 무신경한 대답을 엿들은 패티 보이드는 충격을 받고 영원히 그의 곁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조지는 뒷수습을 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지요. 그녀는 동생을 따라 미국으로 가버리고, 이후 에릭 클랩튼의 초대를 받고 그를 찾아가죠.

그리고 1977년, 조지 해리슨과 패티 보이드는 이혼을 합니다. 2년 후에는 에릭 클랩튼과 결혼을 하게 되죠. 조지는 굉장히 후회를 합니다. 노래로 그 슬픔을 승화시키려 하죠. 그래서 그는 에릭 클랩튼과 패티 보이드의 결혼식에도 참석해서 존 레논을 제외한 다른 두 멤버와 함께 그들의 결혼을 축하하는 연주를 해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그 두 사람과 절친한 사이를 유지했지요.

결혼식 전날 에릭 클랩튼이 메모장에 낙서한 내용이라고 합니다. 그는 결혼식 다음 날, 콘서트 무대에 그녀를 올리고 그녀를 위한 곡인 ‘wonderful tonight'를 불러주기도 할 정도로 그녀에 대한 사랑이 깊었습니다. 아니 깊었었다고 해두죠-_-)


에릭 클랩튼의 문제는 알코올 중독도 중독이지만, 그 또한 바람을 피웠다는겁니다. 1985년까지 두 여자 사이에서 2명의 아이를 낳아 자신의 호적에 올립니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패티로서는 어찌 보면 치욕스러울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자식처럼 그 두 아이를 키웠습니다. 하지만 1986년에 이탈리아의 여배우인 로리 델 산토와의 사이에서 아들 코너가 태어나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혼을 결심하죠. 그리고 89년도에 이혼에 합의하게 됩니다.

에릭 클랩튼은 이혼 후에도 그 이탈리아 여배우와 만남을 지속했습니다만, 1990년에 아들인 코너가 창문에서 떨어져 죽게 되어 또 다른 슬픔을 맛보게 됩니다. 그 아픔에서 탄생한 노래가 'Tears in Heaven'입니다만, 소개는 하지 않을래요. 이 놈의 바람둥이들....-_-


그리고 패티 보이드는 이혼 후 사진작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했고요, 마약과 알코올에 중독된 사람들을 돕는 자선사업을 시작합니다. 아무래도 자신의 남편들이 저 두가지로 인해 인생을 어찌 망치게 됐는지, 누구보다도 잘 아니까 그러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서 비틀즈 별전을 끝마치겠습니다. 다음 주엔 비틀즈 중반기를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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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 Ishii vs FLR - SPACE INVADERS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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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공부하다가 쉴겸 웹서핑을 하다가 찾은 영상.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이렇게 잔인한 게임일줄은 몰랐다-_-)

제3세계 사람들을 돈으로 고용해서 사지로 내모는 국가나 사람들이 존재하는 터무니없는 세상이다. 전쟁이 비디오게임이나 영화 같이 보여도, 결국은 그 안에서 피흘리고 싸우는건 누군가의 아빠나 남편이다. 엄마나 아내일 수도 있고, 솔로일 수도 있고. 그렇다고 내가 강의석 같은 터무니없는 이상론에 휩쓸리는 타입은 아니지만, 전쟁은 무생물끼리 하는 놀이가 아니라는 점은 기억해야겠지.

 인류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전쟁을 국가 내부에 응축된 부조리를 가상의 적을 설정하여 깔끔하게 해소하려는 일종의 자위행위라고 봐도 상관없다면, 그 자위행위를 주관하는 머릿 속의 어떤 뇌세포는 어쩌면 그냥 단순한 암덩어리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뭐, 근데 전쟁이 아니더라도 가상의 적을 설정해서 그 쪽에 모든 부정적인 것에 대한 책임을 전가해서 자신의 책임회피와 자기위안하는 것은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도 나오는거니까 사회 시스템에서 저런 현상이 보이는건 당연할지도.

근데 고작 뮤비 하나 달랑 보고 복잡하게 생각할거 없지 않나?[...]

시험공부가 싫다;ㅅ;

<주말에는 재미있는 락음악> 2회. 브리티시 인베이전 : Beatl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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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비스가 절정의 인기를 자랑하고 있었지만, 50년대 말 ~ 60년대 초의 락앤롤(그냥 편하게 락음악으로 쓰지요) 씬은 10~20대들, 특히 10대들에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딱히 큰 음악적 진보는 없었고, surf rock 같은 음악이 등장하곤 했죠. 비치보이스라는 밴드가 이 때 쯤부터 활동을 했습니다만, 이 시기엔 그냥 소모적인 음악을 하는 그냥 그 정도의 밴드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락 음악이나 블루스 곡 등을 연주하며 꿈을 키워가고 있었죠. 시작된지 10년도 안된 장르라는걸 염두에 두면 이해가 갈거예요. 일종의 연구과정이라고 칩시다.
 
여기서 잠깐 영국으로 시선을 돌려 보죠. 보통 메이저 팝음악이라고 하면 미국과 영국의 팝을 말하고, 락 음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전 회에서 알 수 있듯, 50년대엔 락이라는 개념이 뿌리박지 못했을 뿐더러 팝음악조차 이제 시작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죠.

50년대 말엽과 60년대 초에는 턴테이블이 보급되고, 영화를 통해 일부 틴에이저들이 맛보기 시작하면서, 특히 싱글 형태로 음반판매방식이 굳어가면서 폭발적으로 수요가 늘었지만, 실제로 창작곡을 부르는 밴드보다는 커버 곡을 주점(Pub)에서 연주하는 밴드가 더 많은 상태였어요. 살아있는 전설이 될 롤링스톤즈도 커버 곡에서 시작했고, 이번 회의 주인공인 리버풀 출신 비틀즈도 시작은 초라했습니다. 이들이 불과 몇 년 사이에 거성 밴드가 될지, 미국 음악계를 포함한 전세계를 뒤엎어 버릴지 그 누구도 몰랐을 거예요.

1. 영국의 아이돌 밴드, 아티스트가 되다.


비틀즈는 전원이 영국 공업도시 리버풀 출신의 록밴드입니다. 현대 팝과 락의 기반을 다진 밴드 중 하나죠. 1960년대의 사회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밴드기도 합니다.

존 레논 (John Winston Lennon, 1940-1980), 폴 매카트니 (James Paul McCartney, 1942-), 조지 해리슨 (George Harrison, 1943-2001), 링고 스타 (Ringo Starr; 본명 Richard Starkey, 1940-). 구성원은 이들 넷입니다. 이 중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가 비틀즈의 핵심 두뇌라고 할 수가 있지만, 후기에 접어들면서 조지 해리슨과 링고 스타도 본격적으로 작곡에 참여하기 시작했죠.

일단 존 레논은 광적인 팬에 의해 총격을 당해 사망한 인물로도 유명합니다. 80년도 겨울 쯤 호밀밭의 파수꾼을 즐겨 읽던 마크 채프먼의 총을 9발 쯤 맞고 사망. 그 범인은 아직도 감옥에 있죠. 얼마 전, 가석방이 될 뻔 했지만 부인인 오노 요코 여사에 의해 태클이 걸렸습니다.

이 사람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부인의 존재는 꽤나 중요합니다. 오노 요코, 일본 출신의 유명한 예술가이자, 백남준과 함께 플렉서스라는 예술집단 소속이기도 한 분이죠.

이 분의 존재가 비틀즈의 불화와 해체에 한 몫 했다는 것이 거의 정설인데요, 평소에 여자를 공유(...)해왔던 비틀즈의 자체 룰이 오노 요코가 등장하면서 존 레논이 일편단심 민들레마냥 되버리는 바람에 흐트러져서 사이가 좀 소원해졌단 가쉽성 루머가 돌기도 합니다.

뭐 이건 정말 가쉽이고요, 오노 요코가 등장한 이후 좀 더 정치적이고 아방가르드적으로 변해버린 존 레논의 행동이 멤버들 사이에 불화가 싹트게 된 원인 중의 하나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참고사항 정도는 되겠네요.

폴 매카트니는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지요. 이 분은 무려 작위를 받은 분이기도 합니다. 사실 다른 멤버도 받았는데요, 존 레논은 베트남전 반대였던가? 대략 그런 이유로 훈장을 반납하면서 없던 일이 됐습니다.

폴 매카트니를 두고 20세기 대중음악의 상징적인 인물이라고들 말하는데, 그가 존 레논과 공동작곡한 노래와, 자기 혼자 쓴 곡을 통틀어 차트 톱10에 든 노래가 50개가 넘는다는걸 보면 납득이 가능할겁니다.

비틀즈 시절 대부분의 노래의 작곡자는 레논 & 매카트니로 쓰여 있습니다. 나머지 두 멤버가 작곡한 곡들 빼구요. 존과 폴의 합의에 의해 이렇게 쓰여지기 시작했는데요, 누가 작곡했던 간에 그 둘의 곡은 공동 소유로 하기로 정해두었습니다. 이게 가능했던건 이들의 작곡방식이 공동작업이기 때문이었어요. 모든 곡 중 27곡만이 두명이 1:1 비율로 작곡했고요, 나머지 곡들은 한명이 곡을 작곡한 뒤, 다른 한명이 이걸 완성시키거나 추가 아이디어를 내는 식이었습니다.

우리가 가장 잘 아는 Yesterday도 매카트니가 꾼 꿈에서 들었던 멜로디가 원곡이라더군요. Hey Jude는 폴 매카트니가 존 레논의 첫째 아들인 줄리앙을 위한 곡으로 작곡했구요. 이건 사연이 있는 내용인데, 아마 비틀즈 후반기를 다룰 때 나올 듯합니다.

조지 해리슨입니다. 이 분이 존 레논 이후에 두 번째로 돌아가셨지요. 이 분은 사실 초반엔 비중이 크지 않았습니다. 매 앨범에 한두 곡은 작곡했지만, 이 분의 진가가 들어난건 후반기 들어서였습니다. 인도 음악과 힌두 사상에 심취했던 그는, 영감의 원천을 인도에서 찾으려 했죠.

이 분이 작곡한 노래 중 제가 좋아하는 곡은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와 "Something"인데요, 앞 곡은 정말 블루지하고 락의 본연에 충실한 곡입니다. 이 곡도 조만간에 접하게 될 겁니다.

이 분은 참 대인배스러운 기질을 타고난 분입니다. 66년에 패티 보이드라는 분과 결혼을 했는데, 이 패티 보이드라는 분이 꽤나 마성의 여자랄까요...60년대 말에 그 유명한 에릭 클랩튼과 사랑에 빠지죠. 삼각관계가 된건데, 이 분은 아내를 에릭 클랩튼에게 떠나보내고도 그와 막역한 친구로 지냈습니다. 이 과정에 두 남자는 세기의 명곡들을 작곡해내는데, 이건 아예 따로 포스팅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링고 스타입니다.

링고 스타(Ringo Starr)는 예명이고요, 본명은 리처드 스타키입니다. 가장 뒤늦게 비틀즈의 멤버가 된 분이죠. 이 분도 나름 솔로 활동을 해왔습니다. 위에서 조지 해리슨도 해왔는데 빼먹었네요. 근데 딱히 유명세를 타진 않았습니다. 꾸준히 했다는 점에선 폴 매카트니와 비슷합니다만...

링고 스타는 1965년 모린 콕스와 결혼해 세 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1975년, 이혼을 합니다. 이후 1981년에 영화 <007 : 나를 사랑한 스파이>로 유명한 배우 바바라 버치랑 재혼하죠.

그런데 링고 스타의 아들이 똑같이 드럼을 친다는거 알고 계신가요? 아드님의 성함이 잭 스타키인데,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인상을 받는 분도 있으실거예요. 왜냐면 이 사람이 현재 오아시스의 드러머거든요-_-)

링고 스타의 아들이 제 2의 비틀즈라 불리는 그룹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죠. 근데 사실 좋아할 것도 못 됩니다(...)

아버지는 폴 매카트니랑 존 레논에 치이고, 자기는 오아시스의 악동 형제 노엘 갤러거와 리암 갤러거에게 치이고 있으니까요. 두 눈에 땀이 흐르지요 예orz


뭐, 멤버 소개는 이 정도로 하고, 이들의 역사를 보겠습니다. 이들의 시작은 1955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존 레논이 자신이 다니던 Quarry Bank High School의 이름을 따서 만든 스쿨밴드인 QuarryMen을 친구들과 결성하면서죠. 그 시절에 유행하던 음악을 연주하는 그런 밴드였답니다. 한국으로 치면 고딩들이 축제 때 연주하기 위해 합주하는 그런 풍경이죠. 고향인 리버풀에서도 그리 유명한건 아니었고, 파티에 초대되서 연주하는 정도였는데, 57, 58년에 폴 매카트니와 조지 해리슨이 들어오면서 이들의 음악적 능력이 점점 업그레이드 됩니다.

Johnny & The Moondogs, Silver Beatles...
멤버끼리도 밴드명이 맘에 들진 않았는지, 여러 명칭을 오락가락합니다.

점점 인기가 생겨가면서 이들은 해외 원정도 시도합니다. 독일 함부르크에 가서 거친 노동자들 앞에서 하루종일 공연하는 짓을 다섯 차례나 하기도 하죠. 이런 식으로 경험을 쌓아가던 비틀즈는 기획사에 오디션을 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보는 족족 탈락했죠(...)

그들을 알아본건 EMI의 마이너 레이블인 팔로폰 레이블의 조지 마틴이었습니다. Beatles 신화의 또 한 명의 주역인 분인데, 비틀즈의 시작부터 끝까지 프로듀싱을 한 분이지요. 아직 살아계십니다. 살아있음을 강조하는건 이분이 현재 82세라는걸 말하고 싶어섭니다. 현역에서 99년, 은퇴하셨지요.


어쨌든 이 분의 지휘 아래 여러 차례 담금질을 거쳐, 비틀즈란 밴드가 자리 잡습니다. 사실 이 때까지는 드러머가 링고 스타가 아니었지요. 원래 멤버가 맘에 들지 않았는지, 갈아치운 것이 바로 링고 스타였습니다.

이런 험악한 분위기 속에 덜덜 떨어가며 노래를 불러가면서 앨범 작업을 시작합니다. 스튜디오도 본격적으로 쓰는건 처음이고 해서 실제로 덜덜 떨어가면서 작업을 했다더군요. 폴매카트니가 부른 노래 몇몇은 정말 목소리가 떨리더라구요(...)

어쨌든 1963년 3월 22일, 고대하고 고대하던 데뷔 앨범이 나옵니다.



이 앨범이 바로 비틀즈의 첫 앨범입니다. 건물 복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구도의 사진이 표지로 쓰였는데, 나중에 어떤 싱글에서 똑같은 구도와 자세와 표정으로 다시 한 번 우려먹기도 한 그런 표지죠. 사실 이 앨범은 다른 사람의 곡을 받거나 기존에 있는 곡을 부르기도 했어요. 아무래도 데뷔하자마자라 창작곡만 싣기엔 이들의 역량이 많이 딸리기도 했죠.

뭐, 그래도 영국을 사로잡아버렸으니 아이돌 밴드로서는 충분한거 아닐까요? 아래 동영상만 봐도 최근의 아이돌 그룹 팬들의 모습과 그리 다른거 같지 않습니다. 40년의 시간차를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죠.



이 앨범은 정보가 그닥 없지만, 등장 이후 1963년 4월 6일 영국 차트 10위로 등장, 5월 4일부터 30주간 1위에 랭크되는 등 64주간 차트 100위권에 머무는 신기록을 세웠고 당시 데뷔 앨범으로는 최다 판매고를 기록하던 Elvis Presley의 'Jailhouse Rock'의 판매량을 2만 장 초과하는 25만 장의 판매고를 올린다는 정도만 언급하지요.

세세한 사정을 모르겠네요ㅇ<-<



두 번째 앨범인 With The Beatles입니다. 첫 앨범이 나온지 정확히 8개월만에 나왔죠. 이 앨범에서도 이들의 오리지널 창작곡은 8곡이고, 나머지 6곡은 그들이 좋아했던 노래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척 베리의 노래도 있고 그래요. 딱히 이게 흠이 되지 않는게, 브리티쉬 인베이젼의 또 다른 밴드인 롤링스톤즈는 이 시절까지도 창작곡을 못 내고 있었거든요. 그래도 비틀즈는 비교적 상황이 나은 편이었죠. 비틀즈의 매니저 스텝 중 한 명이었던 이가 롤링 스톤즈의 매니저를 한다는 인연으로 비틀즈가 롤링스톤즈의 곡을 대신 써준 적도 있습니다. 그게 롤링 스톤즈의 첫 번째 히트곡인 "I Wanna Be Your Man"이죠. 이 앨범에 링고 스타가 부른 버전이 들어 있기도 합니다.

이 앨범은 전형적인 소포모어 징크스에 해당하는 앨범이라고 할 수 있어요. 평가도 좋지 않고, 미국에 데뷔 앨범으로 소개될 때 표지만 남고 단 두곡만 살아남는 안습나는 상황을 겪기도 합니다. 나머지는 전작의 노래들로 채워졌대요. 뭐, 그래도 여전히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으니 상관은 없군요-_-) 이 시기가 되자 그들의 인기는 전 유럽으로 퍼지기 시작합니다.

영국에서만의 인기가 아니라는 판단이 들자, 이들은 본격적인 미국시장 진출을 시도합니다. 사실 63년엔 그다지 인기가 없었습니다. 소규모 레이블이 비틀즈의 앨범을 내놨지만 반응이 없었죠. 대략 몇 년 전의 초난강 씨를 보는듯한 경우랄까요. 그러다가 우연히 "I Wanna Hold Your Hands" 싱글이 라디오 방송을 타면서 인기가 수직상승합니다. 64년 2월 미국방문을 앞두고 있던 비틀즈에게 큰 기회가 온거죠.

그리고 방문을 며칠 앞두고 미국의 차트를 석권해버린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I Want To Hold Your Hand / I Saw Her Standing There 싱글이 64년 1월 10일까지 판매누계가 25만장이었는데, 1월 11일 부터 13일까지 3일동안 무려 75만장이 더 팔린겁니다. 밀리언셀러가 된 것이죠. 
 


그리고 비틀즈가 뉴욕에 도착합니다. 미국의 유명 TV쇼인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하는 것으로 공식 활동을 개시하고 미국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버립니다. 그들은 64년 4월 4일자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1위부터 5위까지를 홀랑 차지하고, 100위 안에 총 12곡을 랭크시킵니다. 그리고 홍콩, 호주, 뉴질랜드와 유럽각지를 돌아다니며 세계적인 밴드의 자리를 차지하죠. 이게 1년 반 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64년은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시기였죠.

64년 미국투어에서 34일동안 미국 24개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32회의 공연을 치루는 살인적인 일정 속에서 그들은 노래를 틈틈이 작곡을 합니다. 그리고 미국 방문 일정이 끝나자마자 다큐멘터리 영화이자 하이틴스타들의 어장관리용 영화인 <A Hard Day's Night>를 발표합니다. 그들의 미국 투어를 다룬 영화인데, 이 앨범의 사운드트랙으로 앨범을 발매합니다. 바로 이 음반입니다.
 

A Hard Day's Night 앨범입니다. 처음으로 그들의 자작곡으로만 채워진 앨범으로, 슬슬 자신들만의 행보를 보여줍니다. 틈틈이 시간 쪼개가며 만든 앨범이라 그 성과는 더 부각됩니다만, 이제 시작해나가는 단계라 후기 앨범 같은 퀄리티는 아니죠. 하지만 이 앨범 역시 성공합니다.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록큰롤 앨범이었으니까요. 이들은 영화 작업이 마무리된 8월 중순에 다시 미국으로 향합니다. 그들의 인기는 그들 스스로 감당하기엔 너무나 드높았으니까요.

그들은 슬슬 지쳐갑니다. 숨 고르기가 필요한 시점이었죠.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쳐서 음악 활동을 하는데 여러모로 애로사항이 많아졌습니다. 대충 이 쯤이 이들의 초기와 중기를 가르는 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들의 음악에 대해 스스로 고민을 하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리고 곧 이들의 고민은 결실을 맺게 됩니다.
 

다음 회에 이들이 어떻게 아티스트가 되어갔는지를 다루겠습니다. 늦었지만 재밋게 읽으셨으면 좋겠네요. 아쉽게도 다음 주에 시험이 있어서 3회 역시 2주 후에 연재됩니다. 2주 후에는 목요일과 일요일에 2회 연속 연재를 할테니 좀만 참아주셔요.

다음 회는 비틀즈 별전입니다. 디스코그래피가 아니라 에피소드 식으로 다룹니다. 미리 말씀 드렸듯이, 조지 해리슨과 에릭 클랩튼의 이야기와 Hey Jude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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