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리엇입니다.
여러분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주재락이 돌아왔어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늘도 연재하지 않으면 2MB로 불리겠다고 배수진을 쳤다지요(...)
약속했던 대로 조지 해리슨과 에릭 클랩튼의 그녀인 패티 보이드에 대한 이야기를 별전으로 준비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메인 인물은 아무래도 패티 보이드라고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이 분의 대략적인 생애를 살펴보면서, 두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겠습니다.
PATTIE BOYD
패티 보이드. 본명은 Patricia Anne Boyd고, 1944년에 영국 서머셋에서 태어나서 1960년대에 모델로서 활동했지요. 비틀즈 멤버 조지 해리슨과 에릭 클랩튼의 전처로, 두 남자와의 삼각관계로도 유명합니다. 조지 해리슨과 에릭 클랩튼의 명곡들을 탄생하게 한 분이죠. 조지 해리슨은 ‘I Need You', 'Let It Down', 'Think For Yourself', 'Something', 'So Sad'를 그녀를 위해 작곡 했고, 에릭 클랩튼은 그 유명한 ’Layla'와 ‘Never Make Your Cry', Pretty Girl', 'Wonderful Tonight'를 작곡 했습니다. 전부 다 전설적인 명곡이죠.
패티 보이드가 비틀즈와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은 1964년 비틀즈의 영화인 A hard Day's Night에 패티 보이드가 출연하면서부터입니다.
사실 그리 비중이 큰 역할을 맡은건 아닙니다. 처음엔 비중이 컸지만, 연기력이 딸려서였는지, 영화 내에서 “Prisoners?"라는 대사 한마디로 역이 줄어들었죠.
그녀가 비틀즈에게 싸인을 요청하면서 그들과 친해지게 됐는데요, 조지 해리슨은 다른 사람에겐 하트 한 개만 그려줬는데 패티 보이드에게는 무려 일곱 개의 하트를 그려줬다더군요. 아무래도 처음 만남부터 흑심이 있었나 봅니다. 그런데 그 시절의 패티 보이드에게는 남자친구가 있었습니다. 처음에 조지 해리슨이 작업을 걸 때는 그리 쉽게 넘어가지 않았죠. 하지만 그녀는 조지 해리슨과 함께 있으면 항상 재미있었다고 해요. 점점 패티의 마음이 조지 해리슨에게 기울고 있었죠. 결국 그녀는 2년 간 사귀던 남자친구를 떠나 조지 해리슨과 사귀게 됩니다.
이듬해인 65년에는 조지의 집으로 패티가 건너가면서 동거를 하게 되구요, 그 해 크리스마스에는 약혼을 하지요. 그리고 그 다음 해 1월에 결혼식을 올립니다. 결혼을 하면서 그녀는 모델 일을 그만두게 되는데요, 이는 그들의 사생활이 언론에 노출되는걸 극도로 꺼려했기 때문이죠. 패티 보이드와 조지 해리슨 커플은 비틀즈 멤버 중 유일하게 초혼 중에 임신하지 않은 커플이었는데, 이는 그녀가 애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뭐, 이건 조지 해리슨과의 결혼 생활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만, 에릭 클랩튼과는 문제가 됐었습니다.
어쨌든 앞날이 창창할 거 같았던 이들의 결혼생활은 생각보다 위기가 금방 찾아왔습니다. 66년에 부부가 같이 인도에 여행을 갔었는데, 조지 해리슨이 인도에서 힌두교의 신비주의와 명상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그녀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한거죠. 게다가 결혼 1년 후 즈음에 그의 바람기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패티 보이드는 그를 다시 돌아오게 하고자 애를 쓰는데, 조지 해리슨은 밖으로만 나돌았습니다. 패티 보이드는 결국 최후의 수를 꺼내듭니다. 그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조지 해리슨의 절친한 친구인 에릭 클랩튼을 유혹한거죠. 하지만 이는 되려 자신이 친 덫에 자기가 걸려든 격이 되어버립니다. 에릭 클랩튼이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거든요.
여기서 우리는 조지 해리슨과 에릭 클랩튼이 어떻게 친해졌는지 살펴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사실 그들이 친해진 것은 64, 65년에 에릭이 소속된 밴드 야드버즈(The Yardbirds)가 비틀즈의 콘서트에 출연하면서예요. 하지만 그들이 급속도로 친해진 것은 비틀즈의 White Album에 실린 조지 해리슨의 곡인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에서 에릭 클랩튼이 기타 연주를 해주면서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절친해진 시점에 패티 보이드가 그를 유혹한거죠.
에릭 클랩튼은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을 가지게 됩니다. 친구에 대한 우정과 친구가 가진 모든 것, 특히 패티 보이드에 대한 질투가 공존하게 된거죠. 그는 그녀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녀의 여동생과 사귀기도(-_-) 했고,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졸지에 친구 사이는 연적으로 변했습니다. 에릭 클랩튼의 사랑에 패티는 기뻐하긴 했지만, 동시에 겁을 먹고 그와의 짧은 교제를 끝마쳤죠. 왜냐하면 조지 해리슨이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거든요. 이내 조지는 패티에게로 되돌아왔고, 에릭은 버림받았습니다. 에릭 클랩튼이 희생양이 되어버린거죠.
이때의 조지 해리슨의 마음을 표현한 곡이 비틀즈의 Something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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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때문에 에릭 클랩튼의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집니다. 게다가 아뿔사, 에릭 클랩튼의 또 다른 친구였던 지미 핸드릭스가 죽어버립니다. 그에게는 최악의 시기였습니다. 헤로인에 중독되어 폐인 같은 생활을 하지요. 그 기간동안 그는 그의 절절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기타를 손에서 떼질 않았고, 그렇게 탄생한 곡이 전설적인 명곡인 ‘Layla'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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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NANA에서도 나온 노래죠. 전설적인 기타리프와 애절한 멜로디가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이 노래에서의 레일라는 당연히 패티였습니다. 레일라는 ‘The Story of Manjun and Layla'라는 작품에서 따온 캐릭터인데, 이 여인을 위한 헌신적인 사랑을 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조지 해리슨은 돌아온 것도 잠시였습니다. 도로 바람피고 다녔죠. 결국 그녀의 마음이 서서히 그에게서 멀어져갑니다. 도로 모델 활동을 재개했고, 한 때는 롤링 스톤즈의 기타리스트 론 우드와 사귀기도 했나봅니다. 이런 위태위태한 결혼생활이 종지부를 찍은건 1974년입니다.
우연히 해리슨 부부와 만난 에릭 클랩튼이 조지에게 다가가 그녀를 사랑한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런데 조지 해리슨의 반응은 뜨악했습니다. “Fine. You get her, I get your girlfriend." 이런 무신경한 대답을 엿들은 패티 보이드는 충격을 받고 영원히 그의 곁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조지는 뒷수습을 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지요. 그녀는 동생을 따라 미국으로 가버리고, 이후 에릭 클랩튼의 초대를 받고 그를 찾아가죠.
그리고 1977년, 조지 해리슨과 패티 보이드는 이혼을 합니다. 2년 후에는 에릭 클랩튼과 결혼을 하게 되죠. 조지는 굉장히 후회를 합니다. 노래로 그 슬픔을 승화시키려 하죠. 그래서 그는 에릭 클랩튼과 패티 보이드의 결혼식에도 참석해서 존 레논을 제외한 다른 두 멤버와 함께 그들의 결혼을 축하하는 연주를 해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그 두 사람과 절친한 사이를 유지했지요.
에릭 클랩튼의 문제는 알코올 중독도 중독이지만, 그 또한 바람을 피웠다는겁니다. 1985년까지 두 여자 사이에서 2명의 아이를 낳아 자신의 호적에 올립니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패티로서는 어찌 보면 치욕스러울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자식처럼 그 두 아이를 키웠습니다. 하지만 1986년에 이탈리아의 여배우인 로리 델 산토와의 사이에서 아들 코너가 태어나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혼을 결심하죠. 그리고 89년도에 이혼에 합의하게 됩니다.
에릭 클랩튼은 이혼 후에도 그 이탈리아 여배우와 만남을 지속했습니다만, 1990년에 아들인 코너가 창문에서 떨어져 죽게 되어 또 다른 슬픔을 맛보게 됩니다. 그 아픔에서 탄생한 노래가 'Tears in Heaven'입니다만, 소개는 하지 않을래요. 이 놈의 바람둥이들....-_-
그리고 패티 보이드는 이혼 후 사진작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했고요, 마약과 알코올에 중독된 사람들을 돕는 자선사업을 시작합니다. 아무래도 자신의 남편들이 저 두가지로 인해 인생을 어찌 망치게 됐는지, 누구보다도 잘 아니까 그러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서 비틀즈 별전을 끝마치겠습니다. 다음 주엔 비틀즈 중반기를 다루겠습니다.
